센서리 프로세싱 디스오더(SPD, Sensory Processing Disorder)는 뇌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신경 발달 장애이다. 단순히 ‘예민한 성격’이나 ‘주의력 부족’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SPD는 감각 자극에 대한 신경계의 반응 패턴이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생리학적 현상이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고유수용감각(몸의 위치 감각), 전정감각(균형 감각) 등 다양한 감각 체계가 영향을 받으며, 그 결과 개인의 학습 능력, 정서 조절, 사회적 상호작용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SPD의 진단 기준을 임상적 관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감각 유형별 특성과 사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후, 최근의 신경과학 및 임상 연구 동향을 종합 정리한다.
1. SPD의 진단 기준
SPD의 진단은 단순한 행동 관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임상 현장에서는 다양한 평가 도구와 신경학적 근거를 토대로 감각 반응의 질적, 양적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현재 SPD는 DSM-5나 ICD-11에 독립된 질환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세계 감각통합치료협회(SI Network)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별도의 진단 체계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SPD의 진단 체계는 크게 감각 과민형(Sensory Over-Responsivity), 감각 저 반응형(Sensory Under-Responsivity), **감각 추구형(Sensory Seeking)**으로 분류된다.
- 감각 과민형은 일상적인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유형으로, 예를 들어 전등 불빛이 너무 밝거나 옷의 질감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등 감각 자극에 대한 회피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 회피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감각 저 반응형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둔하거나 지연되는 경우로, 통증에 무감각하거나 주변 환경 변화에 둔감해 보일 수 있다.
- 감각 추구형은 강한 자극을 선호하며 반복적으로 특정 행동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계속해서 몸을 흔들거나 압박감을 찾는 행동이 이에 해당한다.
임상 평가에서는 Sensory Profile 2, SPM(Sensory Processing Measure), Sensory Integration and Praxis Tests (SIPT) 같은 표준화 도구가 사용된다. 이 평가들은 부모 보고서, 교사 관찰, 직접적인 아동 행동 분석을 포함하며, 감각 영역별 점수를 통해 SPD 가능성을 수치화한다.
최근 들어 신경생리학적 측정 도구를 진단 보조로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EEG(뇌파) 분석에서는 SPD 아동이 특정 감각 자극(예: 시각, 청각)을 받을 때 전두엽 및 측두엽에서 비정상적인 알파파 억제 패턴을 보이는 것이 보고되었다. fMRI 연구에서는 SPD 환자가 감각 통합을 담당하는 상측두회(Superior Temporal Gyrus)와 소뇌(Cerebellum) 영역의 연결성이 약화된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는 SPD가 단순한 심리적 요인이나 환경 요인 때문이 아니라, 신경망의 감각 통합 기능 장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유아기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감각 신경망의 가소성이 높은 시기에 조기 개입이 이루어질 경우 뇌 발달의 정상화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상가들은 행동 관찰, 감각 프로파일링, 신경 생리학적 평가를 종합하여 다각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2. 감각 유형별 특성과 사회 기능 영향
SPD는 감각 유형에 따라 사회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감각 과민형의 경우, 사회적 자극이 과부하로 인식되어 대인관계 회피, 불안, 분노 조절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소음이 많은 교실, 형광등이 밝은 사무실 등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이는 직장 적응력 저하로도 연결된다. 특히 아동의 경우 ‘까다로운 아이’로 오해받기 쉬워 정서적 상처를 겪는다.
반면 감각 저 반응형은 사회적 신호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타인의 표정 변화, 말투의 미묘한 차이, 비언어적 신호에 둔감하여 사회적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또래 관계에서 고립되거나,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로 오진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SPD 아동의 약 40%는 자폐 스펙트럼과 유사한 사회 반응 패턴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각 추구형은 에너지 수준이 높고 활동성이 강하지만, 행동 통제가 어렵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극을 찾기 때문에 학교나 직장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또한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 조절이 어렵고, 사회적 경계 인식이 부족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성인기에도 지속되어 감각 자극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습관(예: 운동 과다, 자기 자극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각 처리의 어려움은 인지기능과 정서조절에 연쇄적으로 작용한다. 과도한 감각 입력은 주의력 저하를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불안장애나 우울증 발병률을 높인다. 미국 신경심리학회(ANP)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SPD 성인은 일반인보다 사회적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농도가 평균 18% 높게 나타났다. 이는 감각 과부하가 신체적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최근 임상에서는 감각 중심 치료뿐 아니라 사회 인지 훈련(Social Cognition Training), 정서 인식 훈련, 마음 챙김 기반 감각 조절(MBSR) 프로그램이 함께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감각 자극에 대한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이 자극은 위협이 아니다’라고 인식시키거나, 감정 상태에 따른 감각 반응을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을 훈련한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는 SPD 학생을 위한 환경 조정이 강조된다. 조명 밝기 조절, 소음 차단 헤드폰 제공, 일정한 촉감의 학습 도구 사용 등이 대표적이다. 직장에서는 감각 피로를 예방하기 위해 ‘감각 휴식 존(sensory break zone)’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SPD를 개인의 결함이 아닌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으로 이해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의 일환이다.
3. SPD 최신 연구 동향
2025년 현재 SPD 연구는 신경과학, 유전학, 인공지능 기반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감각 네트워크(connectome)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SPD의 신경 연결성 패턴을 정량적으로 시각화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스탠퍼드 의대의 2024년 연구에서는 SPD 아동의 뇌 백질(white matter) 무결성이 감소하고, 시각 및 전정 피질 간 연결이 느슨해진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러한 신경 연결성 저하는 감각 정보를 통합해 ‘의미 있는 자극’으로 변환하는 과정에 장애를 초래한다.
유전학 연구에서는 SPD의 원인이 단일 유전자가 아닌 다인자적(polygenic) 요인임이 밝혀지고 있다. CNTNAP2, SCN2 A, GABRB3 등 자폐 스펙트럼과 중복되는 유전자 변이가 SPD에서도 발견되었으며, 이는 감각 조절과 신경 신호 전달의 공통 경로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즉, SPD는 자폐증과 별개의 질환이라기보다는 감각 신경 발달 연속선상의 스펙트럼 장애로 보는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임상 응용 측면에서는 VR(가상현실) 및 AR(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감각 통합 훈련 프로그램이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가상공간에서 다양한 감각 자극(빛, 소리, 움직임)을 조절하며 감각 반응을 훈련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현실보다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을 제공하므로 아동뿐 아니라 성인 SPD 환자에게도 효과적이다.
또한 AI 기반 웨어러블 감각 모니터링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피부 전도도, 심박 변동성, 뇌파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감각 과부하 징후를 조기에 경고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특정 주파수의 소음 노출 시 스트레스 반응이 상승하면 스마트워치가 휴식 알림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러한 기술은 향후 SPD 관리의 개인 맞춤형 설루션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대한감각통합치료학회(KASI)를 중심으로 SPD 진단 표준화 연구가 진행 중이며, ‘감각 통합 프로파일 한국형(K-SPM)’의 신뢰도 검증이 완료 단계에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SPD를 발달장애의 하위 범주로 분류하고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검토 중이다. 국제적으로는 SPD가 WHO의 ICD-12(차기 질병 분류)에 포함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치료 접근성과 연구 지원 확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뇌자극 기반 치료법의 도입이 눈에 띈다. 경두개 자기 자극(TMS)과 경두개직류자극(tDCS)을 이용해 감각 피질의 신경 가소성을 촉진하는 임상 시험이 여러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초기 연구에서는 SPD 아동의 감각 반응 속도와 정서 안정성이 개선되는 결과가 보고되어, 향후 비침습적 신경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글 마무리 -
SPD는 오랫동안 “명칭 없는 감각 이상”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명확한 신경학적 근거와 임상 데이터를 통해 하나의 독립적 신경 발달 장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감각 과민, 저 반응, 추구 등 다양한 패턴을 보이는 SPD는 개인의 일상, 학습, 사회 적응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SPD 연구의 핵심은 신경 연결성 기반의 정밀 진단과 맞춤형 감각 훈련의 결합이다.
SPD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회적 수용이 확산된다면, 감각의 차이를 약점이 아닌 신경 다양성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보다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