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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쳤을 때 신호 (기분저하, 집중력감소, 서운함증가)

by noa-0 2026.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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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제가 탈진 상태인 줄 몰랐습니다. 2년 전 승진 후 미친 듯이 일하던 시절, 저는 단순히 '바쁜 시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주말도 없이 밤 11시까지 일했고, 회의 중에 방금 들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서른 중반에 치매는 아닐 테니 그저 피곤한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다 울었습니다. 새까만 눈 밑과 굳어버린 표정을 보며 '이게 나인가?' 싶었고, 그제야 제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심리적 탈진(Burnout)이란 장기간의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신체적·정서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https://www.knpa.or.kr)). 저는 바로 이 상태였습니다.

 

 

 

1. 기분이 가라앉거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때

 

기분 저하는 심리적 탈진의 가장 직접적인 신호입니다. 저는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지?' 생각했고, 예전엔 즐겁던 업무조차 무감각해졌습니다. 성과를 내도 기쁘지 않았고, 그저 다음 할 일만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이런 기분 저하는 마치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에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업무가 늘어나거나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누구나 기분이 나빠질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는 그 영향이 훨씬 더 크게 나타납니다. 같은 스트레스 요인에도 평소보다 훨씬 강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건 무감정 상태입니다. 저는 3개월쯤 지나자 아예 감정 자체가 무뎌졌습니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로봇처럼 할 일만 처리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정서적 둔마(Emotional Blunting)라는 현상으로, 심리적 에너지 고갈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여기서 정서적 둔마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이 현저히 감소한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자책이나 분노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저는 처음엔 '내가 무능해서 이런가'라며 자책했고, 나중엔 '다들 나한테만 일을 떠넘긴다'며 동료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정확한 원인 분석 없이 남 탓이나 자책으로 빠지면, 기분 저하는 더욱 심화됩니다.

 

 

2. 깜빡깜빡, 집중이 안 되는 순간들

 

주의집중력 저하는 심리적 에너지 부족의 가장 흔한 증상입니다. 저는 회의 중에 방금 들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메모를 해도 메모한 사실 자체를 잊었습니다. 처음엔 '치매 온 것 같다'라고 농담했지만,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실제로 중년 이상 나이가 되면 많은 분들이 이런 증상을 노화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이건 대부분 주의집중력 저하로 인한 기억력 감소입니다. 기억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집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지 부하(Cognitive Load)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의미하는데, 심리적으로 지치면 이 용량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쉽게 말해 뇌의 RAM이 부족해진 것처럼, 동시에 여러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면 업무 효율이 곤두박질칩니다. 저는 같은 일을 하는 데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메일 한 통 쓰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간단한 보고서도 여러 번 고쳐야 했습니다. 당연히 업무 품질도 떨어졌고, 상사의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며 스트레스는 더 쌓였습니다.

 

2024년 직장인 번아웃 실태 조사에 따르면, 번아웃을 경험한 직장인의 78.3%가 집중력 저하를 호소했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https://www.keis.or.kr)). 집중력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탈진의 명확한 신호인 것입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처리해야 할 생활 자극은 그대로인데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놓치고 잊게 됩니다. 중요한 약속을 깜빡하거나, 물건을 어디 뒀는지 기억 못 하거나,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자신감마저 떨어지고, '나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냐?' 하는 불안이 커집니다.

 

 

3. 왜 다들 나한테만 이러지? 하는 서운함

 

심리적으로 지치면 대인관계에서 부정적 감정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저는 동료가 "수고했어요"라고 해도 '겉치레 인사'로 들렸고, 남편이 "오늘 많이 힘들었어?"라고 물으면 "네가 뭘 안다고"라며 짜증을 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은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당시엔 모든 게 서운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런 서운함이 증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중립적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합니다. 팀장이 "이 부분 다시 확인해 주세요"라고 하면, 평소엔 '꼼꼼하게 챙기시네' 정도로 받아들였을 텐데, 지친 상태에서는 '내가 일을 못한다는 건가?'로 받아들입니다.

 

둘째, 마음이 힘드니까 다른 사람에게 기대와 요구가 늘어납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좀 알아서 챙겨주면 안 돼?' 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망하고 서운해집니다. 저는 남편이 집안일을 안 도와준다고 불만이었는데, 사실 평소엔 제가 알아서 했던 일들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힘드니 갑자기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셋째, 사소한 갈등에 격하게 반응합니다. 평소엔 웃고 넘길 일에 폭발합니다. 후배가 보고서 제출이 하루 늦었을 때, 평소엔 "다음엔 미리 말해" 정도로 끝났을 텐데, 그날 저는 "이렇게 일하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인 갈등(Interpersonal Conflict)이란 두 사람 이상 사이에서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을 말하는데, 심리적으로 지치면 이런 갈등을 건강하게 조정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심리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 대인관계는 줄어들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부정적 관계만 늘어납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동료들과 점심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져 혼자 먹었고, 남편과도 대화가 줄어들었습니다. 쉬고 회복해야 할 시간에 오히려 더 고립되고 외로워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기분이 저하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업무 효율이 낮아지고, 부정적 평가를 받고, 대인관계가 악화되고, 기분이 더 저하됩니다. 이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휴식과 돌봄입니다.

 

저는 결국 일주일 휴가를 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늦게 일어나서 산책하고, 낮잠 자고, 드라마 보고, 일찍 잤습니다. 처음 이틀은 '이렇게 놀아도 되나?' 죄책감이 들었지만, 사흘째부터 몸이 풀렸습니다. 일주일 후 복귀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업무 속도가 빨라졌고, 회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았고, 동료들은 "표정이 밝아졌다"라고 했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한 번 완주 후 6개월 휴식한다고 합니다. 큰 프로젝트를 끝냈다면 그만한 회복 시간이 필요합니다. 쉬는 게 게으른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전략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어, 이거 내 얘기네' 싶다면, 바로 오늘부터 당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